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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이론, 원숭이 꽃신

PurpleGuy101 2022. 5. 6. 11:46

 

신발에 길들여진 원숭이 우화

2011. 3. 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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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중에 덩치 큰 원숭이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사이를 타고 다니는 원숭이는 긴 꼬리로 중심을 잡으며 손과 발로 나무를 움켜쥔 채 숲속을 종횡무진 하는 유쾌한 녀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숲속에 여우 한마리가 원숭이를 찾아왔다.

등에 커다란 봇짐을 짊어진 여우는 원숭이를 보자마자 크게 절을 하며 인사를 하였다.

 

"이 산중에 가장 날렵하고 가장 힘이 쎈 원숭이님이 아니십니까?"

"음.. 나를 아시오?"

"그럼요! 원숭이님의 명성은 이 숲을 벗어나 저 멀리 바다건너까지 소문이 자자합니다."

"허허.. 난 이숲을 한번도 벗어나 본 일이 없는데 그것 참 신기하군요."

 

처음 본 여우의 듣기 좋은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원숭이는 여우가 자신을 찾아 온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원숭이를 보기 위해서라며 오랜시간동안 칭찬만 하다가 돌아가고 말았다.

 

며칠 뒤, 다시 원숭이를 찾은 여우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원숭이에게 예의를 갖춰 칭찬과 아부로 시간을 보낸 후 산을 내려갔고 그렇게 몇번의 만남을 가진 여우와 원숭이는 제법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원숭이를 찾은 여우는 원숭이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원숭이는 평소의 보여준 여우의 행동과 다름을 알고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요?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해보시오."

"원숭이님이 명성이 이 숲을 넘어 바다건너까지 소문이 자자하다는 말은 제가 했었지요?"

"그렇소!"

"그런데 멀리 있는 동물들이 지금 원숭이님의 모습을 보며 어떤 말을 할까 싶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 모습이 이상하다는 말이요?"

 

여우의 말에 기분이 언잖아진 원숭이가 인상을 쓰며 물어보았다.

 

"화를 참으시고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원숭이님은 숲속에만 살아서 잘 모르실지 모르지만, 숲 밖에 사는 동물들은 원숭이님의 모습과는 약간 다르게 살고 있습니다."

"다르다? 어떻게 다르다는 것이요?"

"지금 원숭이님은 그 훌륭하신 모습에도 불구 하고 신발을 신지 않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신발이라는 것을 신어본적이 없오."

"그렇군요. 하지만 숲 밖의 동물들은 오래전에 모두 신발을 신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미개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정말이요?"

"그렇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은 원숭이님을 다른 동물들이 보면 실망이 클거라 생각하니 걱정이 됩니다."

 

고민에 빠져 있던 여우는 여우는 뭔가 생각난듯 박수를 치며 원숭이를 쳐다보았다.

 

"아! 마침 저한테 남는 신발이 있으니 제가 하나 드리면 되겠군요."

"하지만 나한테는 신발을 살 돈이 없소."

"걱정 마십시오. 신발을 신지 않은 원숭이님의 모습을 본 동물들이 실망을 하는 것 보다는 좋은 일입니다."

"허허..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 주는데 안받을 수도 없고.."

"부담 갖지 마십시오. 저의 작은 선물일 뿐입니다."

 

원숭이에게 신발을 선물한 여우는 산을 내려갔다.

여우에게 선물로 받은 신발을 손에 올린 원숭이는 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죽으로 만든 신발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며진 앙증맞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원숭이는 신발을 신으며 자신의 모습을 보는 여러 동물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상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신발을 신고 걸음을 올기는 원숭이는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신발을 한번도 신어보지 않은 원숭이의 발바닥엔 두꺼운 굳은살이 박혀 있어 언제나 발을 보호해 주고 있었는데 그 굳은살 위에 신발을 신으니 답답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부러운 눈초리로 볼 다른 동물들을 위해 기꺼이 참으며 적응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우가 주고 간 신발은 3달이 지나자 헤어지고 끊어져 더이상 신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자 소식이 뜸했던 여우가 나타나 다시 한켤레의 신발을 주고 산을 내려갔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고..

 

여우가 선물한 신발덕분에 원숭이의 발바닥에 있던 굳은살도 모두 사라지고 신발을 신을때 느꼈던 답답증도 사라져 버렸다.

슬슬 신발이 떨어져 여우가 올때를 기다리던 원숭이의 눈에 산을 오르는 여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서오시오. 그렇잖아도 신발이 떨어져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오."

"이런이런.. 그렇잖아도 신발때문에 긴히 드릴 말씀이 었었는데 잘되었군요."

"신발 때문에 할 말이라니 그게 뭐요?"

"제가 가지고 있던 신발이 모두 동이나는 바람에 멀리 있는 숲에서 사와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발을 사려면 이 숲에만 나는 열매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내 신발을 사는 일인데 내가 도와주겠소."

"하하하.. 그럼 광주리로 20개만 따다 주십시오. 그럼 신발을 사오도록 하겠습니다."

"광주리 20개나?"

"신발은 그렇게 싼게 아니라서 그정도가 아니면 구할수가 없습니다."

"음.. 알았소. 내일 다시 오시오."

 

여우가 산을 내려가자 원숭이는 밤새 광주리 20개의 열매를 따기 위해 온 숲을 뛰어다녀야 했다.

광주리 20개의 열매를 주고 신발을 얻은 원숭이는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그�게 3달에 한번씩 신발을 사기 위해 열매를 따러 다니던 원숭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신발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걱정을 하게 되었다.

숲에 남아있는 열매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고 그렇다고 신발을 벗어버리자니 그동안 자신의 발을 지켜주었던 굳은살이 모두 사라져 신발없이 생할하기가 불가능 해 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원숭이는 신발을 얻기 위해 온 숲의 열매를 여우에게 줄 수 밖에 없었고 숲이 열매가 모두 사라지자 숲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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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꽃신’ 전략을 아시나요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11.18 00:00

 

'동물 나라에 세상 모르고 편안히 살던 원숭이가 있었다. 하루는 오소리가 찾아와 원숭이에게 오색 빛 꽃신을 선물했다. 원숭이는 신발이 필요 없었으나 선물이라기에 받아 신었다. 그 후로도 오소리는 꽃신을 계속 바쳤고 원숭이 발바닥 굳은살은 차츰 얇아졌다. 이윽고 신발 없이 나다닐 수 없게 된 원숭이는 그만 오소리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정휘창씨가 1977년에 쓴 유명한 동화 <원숭이 꽃신>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천만 회원을 가졌다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회사는 이 우화를 현실로 만들었다. 프리챌홀딩스(주)는 11월14일부터 국내 최초로 커뮤니티 유료화를 단행해 파장을 일으켰다. 마스터 회원(동호회 운영자)에게 매달 3천원을 내도록 요구했는데, 네티즌 세상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프리챌을 떠날 것인지 격론이 벌어진 것이다. 프리챌의 커뮤니티 수는 1백12만 개에 달한다.


프리챌 서영선 과장은 매달 서비스 운영 비용으로 13억원이나 들어간다며 유료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11월9일 현재 10만 명이 유료화에 동의하고 요금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의 한 동호회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권기봉씨(24)는 “회원이 2백명이 넘고 게시물도 3천 건이 넘어서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유료화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남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2000년 프리챌이 처음 무료 서비스를 열 때부터 이런 전략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프리챌은 원숭이(고객)를 유혹한 오소리가 되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런 ‘원숭이 꽃신 경제학’에 충실한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학을 상대로 마케팅 사업을 많이 벌이고 있는데 그 중에 AATP라는 서비스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학에 무료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신, 해당 대학은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교과목을 설치해야 한다는 계약이다. 학점을 인정받는 정식 과목이어야 하고, 대학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강의계획서·운영계획서·결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현재 1백60개 주요 대학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학생 때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익숙해지면 사회에 나와서도 같은 제품을 쓸 가능성이 높다. 워드프로세서 같은 소프트웨어는 새로 배우는 데 학습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의 빈민 학교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지원하려고 했지만 연방 법원이 독점이 우려된다며 규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은 지난 9월17일 전세계 학교에 자사 프로그램을 공짜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1998년부터 AATP 계약을 맺은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AATP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제 수업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만 강의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서울대가 보고서를 불성실하게 제출하는 등 계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협정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통신회사가 핸드폰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한 번 가입자는 평생 가입자가 되기 쉽다.


경쟁 방해·신기술 개발 ‘양면성’ 지녀


업계에서는 이 ‘원숭이 꽃신 전략’을 전문용어로 록인이펙트(Lock-in effect)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벤처 업계에서 일하는 한 마케팅 담당자는 “요즘 전략 회의를 할 때마다 고착화 전략이나 록인이펙트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라고 말했다. IT업계에서는 특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이 전략을 흔히 응용한다. 프리챌이 초등학생에 한해서는 요금을 면제하거나 이동통신업체가 10대에게 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도 비슷하다. 록인이펙트가 인위적·자연적 고착 현상에 모두 쓰이는 말인 데 비해, 원숭이 꽃신 마케팅은 기업이 주도하는 인위적인 현상만을 설명할 때 쓴다.


박준우 교수(상명대·경제학)는 “기본적으로 록인이펙트는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독점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품의 질을 높이기보다 고객의 교체 비용을 높이는 방식은 실질적인 경쟁을 방해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김상훈 교수(서울대·경영학)는 “꼭 록인이펙트를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어떻게 잠금 효과를 풀 수 있을지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록인이펙트와 교체 비용(switching cost)은 양면의 거울 같은 것인데, 교체 비용을 낮추는 신기술이 등장하면 열쇠가 자물쇠를 열 듯 ‘록’이 풀린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프리챌이 유료화를 선언하자, 경쟁 업체가 자동 게시물 이전 프로그램을 만들어, 프리챌에 저장된 자료를 손쉽게 옮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휴대 전화의 경우에도 ‘포터빌리티’(이동성) 서비스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011을 쓰던 사람이 019로 전화번호를 바꿀 경우, 기존 011 번호로 걸어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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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이론 - 나무위키

1. 개요[편집]

:  / En: Dependency Theory / Es: Teoría de la dependencia

소수의 강대국들이 전세계를 식민지로 분할 점령하던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제국주의론[1]을, 2차대전 이후 식민지들이 점진적으로 정치적 독립을 이루었으나, 경제적으론 여전히 저발전 상태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맞추어 변형한 이론이다.

2. 등장 배경[편집]

거시경제학에서 이론적으로는 자유 무역 상황에서[2] 선진국이 후진국보다 노동집약적 산업과 자본집약적 산업, 두 분야 모두에서 우월하다 하더라도, 노동집약적 산업에 투자할 자원을 자본집약적 산업에 더 투자하여 후진국과 무역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이 크기 때문에, 후진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에 투자하여 선진국과 무역을 할 수 있고, 이러한 무역을 통해 선진국과 후진국이 동반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본이 부족했던 후진국은 상대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게 되고, 점차 산업규모의 발전과 자본집약적 산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 경제 성장이 가능하게 된다.

경제학적 이론으로는 이랬지만, 현실에서는 식민지를 벗어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 중의 하나가 종속 이론이다.

3. 주장하는 내용[편집]

종속 이론은 자본주의 사회 내의 계급간 착취-피착취 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전세계적인 국가간 관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에는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 소위 선진국들이 존재하고, 주변부에는 선진국보다 후속적으로 자본주의에 편입된 국가들, 즉 과거 선진국에게 식민지로 착취당하던 제3세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 주변부 국가들이 전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면 선진국들에 의해 구조적 종속을 초래해 '저발전'이라는 왜곡된 형태의 발전 경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치적으론 식민지에서 독립했지만, 경제적으론 만성적인 종속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속 이론이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국가간의 착취를 총괄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을 그 의의로 볼 수 있다.

중남미 일대 국가들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에서 출발하여 신마르크스주의나 구조주의적인 경향을 띄며 발전하였다. 이는 제3세계 식민지 출신 국가들의 혼란상이나 저발전을 설명하는데 쓰였는데, 한마디로 식민지에게 자유를 준 것은 이들에게 자유를 준 대신 선진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구조속에 편입시킴으로서 착취의 구조를 바꾼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학자들마다 주장이 조금씩 달라서, 창시자격인 프랑크(A. Frank)[3]의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 외에도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F. Cardoso)[4]와 같이 자본주의의 주변부에서도 국가의 정과 경제구조에 따라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나, 이매뉴얼 월러스틴처럼 세계체제론을 전개하면서 중심과 주변의 중간에 준(準)주변이라는 카테고리를 두고 주변에 있는 국가도 준주변으로 상승이동하고 더 나아가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경우도 있다.

이렇듯 개발도상국이 종속되어 있어도 발전하는 경우는 후에 종속적 발전이라고 한다. 보통 이런 주장에서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되는것이 바로 미국.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은 현대판 노예제인 자본주의로 세계인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흡혈귀같은 존재다. 왜냐하면 종속이론 자체가 1960년대 미국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지원아래 미국 대기업이 사실상 경제를 지배하던 중남미를 배경으로 싹텄기 때문이다. 중남미는 20세기 이후 미국 등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었고, 만성적인 저성장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반복되는 외채위기로 몇십년간 제자리 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풍부한 지하자원과 농업생산력, 거대한 인구라는 잠재력이 있음에도 외부에 의해 강요된 플랜테이션 농업과 자원수출 등 1차산업 위주로만 경제가 구성되었고, 주 수출품인 몇가지 농산물이나 광산물 등 자원의 국제가격에 따라 나라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는 정도였다. 대안으로 수입대체산업화(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를 추진했고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 했다. [5] 종속이론이 중남미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도 바로 이런 현실에 기반했기 때문이고, 실제로 미국에서는 브라질,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파라과이,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의 군사독재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서까지 미국 대기업이 가지는 기득권을 지켜내려고 했었으며 더러운 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6]

한국에는 1970년대부터 이론이 수입되기 시작해서 진보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되었으며, 1970년대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나 80년대의 '외채망국론'도 종속이론과 연관이 깊다. 외채망국론이 한창 성행했던 1980년대에는 중남미 국가뿐만 아니라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외채난에 허덕였으며 심지어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 다수의 동유럽 공산국가들조차 외채에 허덕이며 복지정책을 축소시키거나 배급제를 시행하여 지지율을 까먹어 결국 이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철회와 함께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이어질 정도로 외채망국론이 국제적으로 입증되던 시절이었다. 특히 민주화운동이 1980년대 접어들면서 사회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나름의 이론적 기반을 만들어 나가던 시기에 종속이론은 크나큰 영향을 주었으며, 반독재민주화운동진영의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즉, '한국의 모든 사회적 모순은 미국 같은 자본주의국가의 착취와 사회구조 왜곡으로 인해 발생한다!'라는 민중사관 주장으로 1980년대 운동권에서 통용되곤 했다.[7]

참고할만한 것이라면 중진국 함정이나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바나나 공화국, 라틴아메리카 해방사등을 교차검증해보자.

4. 반박[편집]

종속이론은 70년대 이후 종속이론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적 착취가 없어야 했을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침체와 더불어 1980년대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신흥공업국들이 출현하면서 그 현실성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겪다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대한민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고도성장을 통해서 중진국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종속이론 대로라면 이들 국가는 자본주의 중심부 강대국(미국, 일본 등)에 종속되어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한 착취에서 항구적으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에 반례를 드는 경우가 생겨났다는 것.[8][9] 게다가 이들 뒤로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10] 등의 동남아 국가들도 그 뒤를 이어 속속 성장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때 외환위기 등으로 심각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결국 어려움을 이겨냈고 현재는 네 나라 모두 사실상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외에도 바로 종속이론의 본거지인 중남미의 칠레 브라질 등이 가파른 경제성장을 달성하였고,[11] 폴란드 체코 등 구 공산권 국가들도 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되면서 득을 본 케이스에 속한다.

사실 가장 큰 반례가 될 수 있는것이 바로 자본주의 열강의 침입을 겪으며 사회주의로 전환된 중국, 인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사회주의적 해방이론에 근거해 국제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고립되어 있던 시기와 비교해 봤을 때 개혁개방으로 국제자본주의 질서에 스스로 편입된 현재의 경제력이나 국제적 위상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상승했다. 물론 이것은 중국 스스로가 가진 잠재력을 터뜨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사회주의 이론에 근거해서 발휘하기는 커녕 깎아먹기만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오히려 과거 (비동맹) 제3세계였던 중국의 기업이 1세계 서구 기업을 흡수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민족해방을 입으로만 부르짖고 국제자본주의를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이라 비난하면서 고립의 길로 나아가다가 결국 파탄이 난 북한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물론 비판적인 입장에선 그건 국제적인 착취를 거부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이들에게 보복성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선택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게 만든 것이 단순히 미국의 잘못인가라면 그건 결코 아니라는 것. 이는 '제3세계 국가가 항상 피해자일 뿐인가?'라는 질문의 답도 된다.[12]

그러니까 같은 지역군에 속한 국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발전의 강도가 다르고 어떤 국가의 경우 이런 체제를 벗어나 더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종속이론이 간과하고 있다고 보기엔 충분했다는 것이다. 흔히들 후진국 이미지가 강한 말레이시아의 1인당 GDP는 10,400달러 수준이고 베트남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국제자본주의와의 결탁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2차대전 이후 출현한 신생독립국들, 즉 소위 제3세계의 만성적인 저발전 상태의 원인을 일률적으로 제1세계의 착취로 몰고 가는 것은 지나치게 독단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제1세계 제3세계의 관계를 '종속'이라는 개념을 통해 봉건적이고 수직적인 관계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수로, 제3세계 국가들의 혼란스럽고 암울한 내부 상황은 구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가 남긴 착취, 폐해와 기형적인 경제구조[13]라는 요인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리적 위치나 전통적으로 이어진 주변국과의 갈등 등의 외부적 요인도 적지 않으며, 종족 갈등과 내전, 부정부패, 토지개혁의 실패 같은 내부적 요인[14]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인, 대한민국보다도 앞선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필리핀의 몰락은 미국의 착취 때문이라기보다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로 대표되는 부유층의 부패와 타락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이들의 경제적 문제를 착취로 돌리면 곤란하다는 것이다.[15]

또한 종속이론적인 관점을 가장 잘 써먹는 것이 제 3세계의 독재자들(대표적으로 우고 차베스 등)인 것과도 연계해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미국이나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결국 국가 내부의 모순은 치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빌미의 상당수를 식민지 시절의 서구 국가들이 제공한 것은 사실이나, 해방 이후 수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로지 그들의 문제라고 돌려버린다. 종속이론은 이 모든것을 서구자본주의의 잘못으로 취급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가 어렵다. 까놓고 말해서 1세계는 항상 국제정치에서 사악한 존재고 3세계의 국가는 단순히 피해자일 뿐이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1970년대 중반부터 제기됐다. 베네수엘라 작가 카를로스 랑헬(Carlos Rangel)이 그의 책인 『고상한 야만인에서 고상한 혁명가로 』에서 이베로아메리카의 가치관과 태도, 그것들을 반영하고 강화하는 제도들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실패'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의 자기비판 회피 경향을 비판하여 대다수의 지식인으로부터 공격당했다. 197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옥타비오 파스는 북미와 남미를 "영어를 말하는 북미는 현대 세계를 만들어낸 전통의 딸이다. 그 전통인 종교개혁은 온갖 사회·정치결과를 비롯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가져왔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말하는 남미는 가톨릭 왕정과 반종교개혁의 딸이다"로 대비시켰다. [16]

예를 들면 현대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석유에서는 선진국 후진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국제적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중동 산유국 역시 이러한 특수성에 비추어 경제적으로 벌어들이는 오일달러가 어마어마하다.[17] 그러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불만은 석유로 인한 부의 내부적인 불평등의 문제이며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지배층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점이다.

또 불평등의 거래는 중심국권 내의 두 국가 간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외자와 기술 도입이 경제 기반의 구축에 기여하는 부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종속학자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자본주의의 종속경제의 저발전운동법칙을 각국의 특수성을 외면한 기계적 형식논리로만 전개했다는 것이다.

종속이론의 비판 측에서는 무엇보다 종속이론이 평등하고 조화로운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제3세계의 자본주의가 서구와 같이 자율적으로 발전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근대화나 평등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즉 '잃어버린 민족적 자본주의에 대한 향수'가 종속이론가들의 주장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종속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종속이론의 주장이나 사실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계급 모순을 가지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것이 합당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편 좌파진영 내에서도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이 속출했는데 이들은 종속이론의 근원적 문제점을 계급 모순에 대한 무시에서 찾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모순인 내적 계급 모순을 경시하고,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종속과 같은 외적인 요인에서 찾은 데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종속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간의 모순이 존재함을 인정하나 그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고유 모순인 계급 모순보다 상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18] 쉽게 말하자면 어떤 정신병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 저지르는 사건의 해석을 그의 사회관계나 교우관계의 문제로만 해석(외적관계)하여, 그의 정신병적 기질(내적관계)을 간과하는 정도로 비유 가능하다. 즉 문제의 근원을 잘못 찾았다는 것.

또한 종속이론이 중남미의 현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이론이므로,[19] 그 외 지역에서는 적합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는 점도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농지개혁 한국전쟁으로 일거에 전통 지주층이 무너졌으며,[20] 중남미 국가들과는 다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남미에서도 칠레같이 어지간한 서구 선진국 급으로 시장자유를 중시한 나라가 고성장한 것을 본다면 이 역시 부적절하다.

그외 종속이론의 문제점이라면 아래와 같다.
  • 종속이론 속에는 어떤 지역이 세계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면 그곳에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도입되고 전자본주의적 부문이 재편성된다는 점은 인식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이에 대항하는 민족주체를 낳는 내적 발전 과정의 해명이 결여되어 있다.
  • 의존(dependence)은 통일국가 사이에서 외부적으로 서로 의지하는 것인 데 반하여, 종속(dependency)은 후진적이고 동질성이 덜한 사회에 병합하여 노동을 세계적으로 분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보다 복잡한 일련의 관계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구별하는 데서 종속개념은 출발하지만, 그 개념은 아직도 애매모호한 입장이다.
  • 저개발세계가 해방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민족국가 형성이 지니는 의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 종속성 탈피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5. 기타[편집]

염홍철  대전광역시장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일 때 종속이론을 연구하였다.

박세길 저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등 1980~90년대 초에 나온 민중사관 관련 도서에서도 차용되었고, 이원복 학습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도이칠란트 [21]편에서 이 종속 이론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설명한 적이 있다.[22]

종속이론은 미국과 중앙아메리카-카리브 국가들의 관계에 주목되어서 나온 이론이며, 그 이외의 지역에서 비슷한 사례는 옛 프랑스 식민지 지역에 실현되고 있다. 프랑스 식민주의는 아프리카에 여전히 현존한다.

6.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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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 이론(theory of dependency)

2005. 9. 13.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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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 이론(theory of dependency)

 

 

종속이론(theory of dependency)의 성립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사회, 경제적 실패라는 독특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를 오브라이언에 따라 정리해보자

 

1929년까지 라틴아메리카 각국들은 수출을 경제성장의 근간으로 삼는 외부지향적 발전노선(desarrollo hacia afuera)을 발전전략으로 삼았다. 대공황이 밀어닥침에 따라 성장전략으로 채택되었던 수출에의 의존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수출에 의한 외화 획득이 급격하게 감소함에 따라 라틴아메리카는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되었다. 여기에서 새로운 발전 노선 및 전략이 요청되었는데 이것은 내부지향적 발전노선(desarrollo hacia adentro)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2차대전 이후 이러한 내부지향적 발전노선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와 경제계획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났는데, 이것은 UN산하기관인 라틴아메리카경제위원회(ECLA)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ECLA의 관점은 흔히 “구조주의적 시각(structuralist perspective)"이라고 불린다. 구조주의적 시각이란 각국의 상이한 역사적 상황과 국가적 맥락을 강조하는 입장으로서, 저발전국가의 저발전의 원인을 이들이 상이한 행동유형을 갖는 상이한 구조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입장은 전통적 경제학이론이 라틴아메리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근거로 작용했는데, 이때 싹튼 보다 중요한 관점은 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의 원인은 세계경제 속에서의 이들의 위치,  중심부 - 주변부 관계(center-periphery relation)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ECLA의 초대 총재를 맡았던 프레비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본다. 즉 일차산품의 수출은 교역조건에 있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악화를 겪게 되고, 또한 이들 수출품에 대한 중심부의 수요탄력성은 점차 감소하지만 반대로 중심부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주변부의 수요탄력성은 증가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ECLA는 높은 관세장벽을 쌓고 이로 하여금 국내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자원의 적정배분을 가능케 할 것을 제안했다. 이것이 곧 수입대체 산업화(import subsititution)의 전략이다.

 

 그러나 종속이론이 발전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이러한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60년대에 오면서 수입대체산업화의 모형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문제를 들자면, 수입대체산업화는 대외의존을 감소시키지 못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소득배분이 점점 더 불평등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인구의 많은 부분이 주변화 되었다. 문화적 소외가 만연했고 라틴아메리카 사회들은 여전히 분파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산업화를 위한 국가정책은 다국적기업의 압력에 굴복했고, 라틴아메리카의 산업화는 주로 외국 투자가에 의하여 수행되었으며, 끝내는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실패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 종속이론이다.

따라서 종속이론은 그때까지 라틴아메리카의 발전정책의 근간이 되어 왔던 근대화이론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제3세계의 저발전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된 이중구조론과 발전전략론으로 제시된 전파론의 부적합성을 강력하게 비판하게 된다.

 

이러한 근대화이론의 부정을 통하여 종속이론가들은 제3세계의 저발전의 문제를 중심부국가의 발전의 문제와 동일한 역사적 과정에서 개념화하게 되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적 팽창과 덜 발전된 국가의 경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이미 제국주의이론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홉슨과 레닌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제국주의이론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게 되면 내부의 경제위기로 인하여 해외에서 상품시장을 구하거나, 혹은 낮은 임금과 지대 및 값싼 원료의 이점 때문에 후진국에 자본을 수출하게 된다고 주자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은 주로 중심 국가들에 있어서 제국주의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있었고, 따라서 이러한 제국주의가 주변부국가들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서는 의미 있게 분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서구자본주의 내부의 경제적 위기가 어떻게 연기되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계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려고 했다. 오히려 이들은 자본의 수출이 주변에서의 공업의 발전을 자극할 것이고, 따라서 이것에 의하여 중심부의 경제적 지배가 위협받게 될 거이라고 보아 후진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였다.

 

    종속이론은 세계자본주의체제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제국주의이론의 일면을 수용하면서 관심의 초점을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팽창의 “결과”로 전환시킨다. 즉 중심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고전적 제국주의이론을 주변부의 문제의식으로 재조명한다. 이 결과 종속이론가들은 제국주의적 침투가 국제적 분업을 고착시키고, 잉여의 유출을 통하여, 저발전국가의 자본주의 발전을 확대시키고 심화시키기보다는 경제발전을 느리게 하고 통제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종속이론은 고전적 제국주의이론에 대하여 많은 수정을 가하면서도 주변부의 저발전을 중심부 자본주의의 동태와 연관시킴으로써 제국주의이론의 기본적 시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지적 배경 하에서 발생한 종속이론은 내부구조에 있어서 근대화이론만큼이나 복잡하다. 종속이론가들 자신이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있어서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이들 사이의 내부적 비판, 수정을 통하여 종속이론이 스스로의 운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론가들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는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 네 사람의 주장과 후기 종속이론가들의 보완적 노력을 검토해 보겠다.

    

  바란은 종속이론의 핵심적 사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서구와 제3세계간의 이해관계의 상충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저발전된 국가에 대한 착취가 이들 국가에 있어서의 경제성장을 방해한 대신에 서구의 자본주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즉, 후진세계는 공업화된 국가들에게 중요한 원료를 공급하고 그들 국가의 회사에 방대한 이윤과 투자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언제나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적 서구국가의 필수불가결한 배후지가 되어왔다. 그에 따르면 서구의 침투는 제 3세계에서의 자본의 원시적 축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경제잉여(economic surplus)'의 유출과 인간 활동 및 자원의 낭비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후진국에서는 ’잠재적 경제잉여(potential economic surplus)'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치생활, 비생산적 노동자의 존재, 생산조직의 비합리성 등의 요인에 의하여 ‘실제경제잉여(actual economic surplus)'로 생산되지 않음으로써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경제잉여‘의 개념이 이론적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구 자본주의국가와 저발전국가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명제는 종속이론의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바란의 사상을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에 적용함으로써 종속이론을 더욱 체계화시킨 사람이 프랑크이다. 바란과 마찬가지로 프랑크도 오늘날의 서구는 제3세계의 착취를 통하여 발전되었고 제 3세계는 서구의 발전을 도와줌으로써 저발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자본주의체제는 중심부(metropolis)와 위성(satellite)의 관계로 개념화될 수 있다. 그는 이 관계를 국가 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한 국가 내의 계급 간에도 확대시킴으로써 가장 발전된 국가의 중심부 자본가로부터 가장 덜 발전된 국가의 노동자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위계서열이 존재한다고 본다. 잉여는 바로 이 위계서열을 따라서 연속적으로 추출된다. 프랑크는 제3세계의 어떤 제도나 구조도 이러한 중심부-위성의 착취체계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제3세계 내의 봉건적 혹은 반봉건적 구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프랑크는 라틴아메리카가 제국주의와 접촉하면서부터 자본주의적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두에 라클라우 등의 비판을 받게 된다. 즉, 바란, 프랑크, 윌러스틴 등의 ‘교환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 개념으로 바뀔 것이 요구되었다.

 

  아민은 아프리카 국가에 종속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종속이론을 보다 정교화 하였다. 종속이론에 대한 아민의 기여는 (1)종속이론을 ‘세계자본축적론’으로 전환시켰다는 점. (2)부등가교환의 개념을 정교화 시켰다는 점. (3)주변부 사회구성체론의 확립 등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그의 주변부 사회구성체론에 대한 논의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체제의 전반적인 불평등은 낮은 임금의 국가와 높은 임금의 국가 간의 분화에 기초한다. 이러한 불평등의 경향은 일단 확립되고 나면 세계시장의 작용에 의하여 영속화 내지 증가되며, 이 때문에 주변부의 경제는 중심부의 요구에 맞도록 애곡된다. 즉 주변부로 하여금 환금작물 지향의 ‘환금화(monetarization) '와 수출 지향의 ’외향화(extraversion)'를 강요함으로써 불평등한 전문화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윌러스틴은 오늘날 종속이론을 심화시키고 전파시키는 데에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이론에서 가장핵심적인 개념은 “세계체제(world system)"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체제는 16세기에 발생하였으며, 이것의 중요한 특징은 경제적으로 통일체를 형성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서로 독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근대 세계체제 이전의 세계체제는 ‘세계제국(world empire)’의 형태로 존재했었는데, 이것이 근대 유럽의 세계체제와 다른 점은 단일한 정치기구에 의하여 통치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제국은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즉 관료층이나 군사기구의 운영을 위한 지출이 착취로부터 얻어내는 경제적 이득을 능가함으로써 세계제국은 내부로부터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럽의 세계체제는 정치적 독립을 허용함으로써 보다 융통성 있고 안정된 체제를 이룰 수 있었다.

 

  윌러스틴에 따르면 세계체제는 세 종류의 국가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상업화된 농업과 공업적 생산 모두에 참여하는 서구의 소수 중심국가와, 주로 중심부에 수출되는 몇 가지 1차생산물만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주변부국가, 그리고 생산체제에 있어서 중심국가와 주변부 국가의 중간에 위치하는 반(半)주변부 국가가 그것이다. 이러한 세계지배의 3분체제론은 다른 종속이론가들의 중심-주변이라는 양분론에 비하여 상당한 이점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중심과 주변 사이에 반주변부를 설정함으로써 세계체제가 갖는 안정의 성격을 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세계체제이론에 대한 그의 주요 공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반주변부의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계층체계에서의 반주변부의 역할을 일국의 사회계층체제에서 중간계급이 행하는 역할과 같다. 즉 계층체계의 양극화를 방지함으로써 체제의 안정화에 커다란 공헌을 한다는 것이다. 윌러스틴의 이러한 세계체제론 역시 ‘생산양식론’으로부터 ‘유통주의적 시각’이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그의 이론이 일국 모형에 의존해왔던 기존의 사화과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종속이론가드의 주장에 덧붙여서 이른바 후기 종속이론가들의 입장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후기 종속이론으로는 도스 산토스의 ‘신종속이론(new dependency)’과 에반스와 까르도소 및 팔레토의 ‘종속적 발전론이론(dependent development)'이 있다.

 

여기에서는 에반스와 까르도소 등의 ‘종속적 발전론’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초기의 종속이론은 제3세계의 저발전의 원인을 세계자본주의체제에의 편입에서 구함으로써 내부적 현상의 설명에 있어서 외부적 요인을 강조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외부적 용인은 단순히 ‘외부적 상황’이 아니라 ‘결정요인’으로 파악되었다. 즉 이들의 분석에서는 “내부사회의 형태, 제국주의에 대한 반작용, 내부사회의 정치적 동태 및 대안의 시도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

 

  에반스는 브라질의 발전에 대한 연구에서 오늘날 브라질과 같은 국가에서 자본의 축적은 '고전적 종속‘의 상황에서와는 달리 매우 주목할 만하다고 주장한다. 즉 자본축적을 통하여 상당한 정도의 공업화가 이루어졌고 보다 복잡한 내부적 분업과 생산성의 증가가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종속적 발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종속적 발전이 결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고전적 종속의 많은 모순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종속적 발전론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가 제시한 유력한 토착자본, 국제자본, 국가자본 간의 “3자 연합(triple alliance)”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초기 종속이론에 포함되어 있는 외부요인 결정론을 극복하고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간의 결합이 발전의 조건을 형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비슷하게 까르도소와 팔레토는 방법론적으로 역사적 - 구조적분석(historical-structural analysis)을 강조하면서, 피지배사회의 발전 동인이 되는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관계들을 설명모형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종속의 형태는 국가마다 시기마다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크기와 유형, 중간계급의 크기와 유형, 관료제의 비중, 군대의 역할, 국가의 형태, 사회운동의 바탕이 되는 이데올로기 등을 통하여 나타난다.

 

  이들 후기 종속이론가들은 모두 초기 종속이론가들에 비하여 종속국가 내부의 요인, 혹은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의 결합에 보다 큰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종속의 상황을 고정 불변적이거나 획일적인 형태로 보지 않고 동태적이고 다양성 잇는 조건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확실히 후기 종속이론은 초기 종속이론의 정태론적, 기계론적 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종속이론은 사상적 근원과 정치적 지향에 있어서 각기 다르고 또한 계속적인 발전과정을 겪고 있지만 몇 가지 공통된 접근 방법을 보여준다. 첫째로 이들은 역사적 접근방법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역사적 접근방법이란 오늘날 세계 각국의 발전과 저발전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그 원인을 세계발전의 역사적 계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앞의 근대화이론이 발전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의 횡단적 비교를 통하여 거기서 나타난 차이를 발전 혹은 저발전의 원인으로 규정함으로써 몰역사적 분석이라는 비판을 받는 반면에, 종속이론은 근대 이후의 세계사의 발전과정 속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종속이론이 역사성을 강조함으로써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논리적 결과는 발전과 저발전을 서로 분리된 현상으로 보지 않고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전개라는 동일한 역사적 과정의 상이한 두 측면으로 본다는 것이다. 근대화이론이 발전과 저발전을 어떤 ‘상태’로 파악하는 반면에 이를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또한 종속이론가들은 전파론에 기초한 근대화이론의 발전전략의 몰역사성을 비판한다. 도스 산토스는 전파론의 발전모형이 특수한 사회에서 존재했던 조건을 일반적인 목표로 제시하기 때문에 몰역사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미래사회는 이전에 다른 사회가 이룩한 단계를 달성할 수 없으며, 모든 사회는 미래를 향하여 그리고 근대사회를 향하여 함께 움직인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종속이론이 주장하는 역사성은 현재의 발전과 저발전의 원인을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역사적 과정에서 찾고, 나아가서 저발전국의 발전의 목표 및 전략도 역사발전의 법칙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다.

 

  종속이론의 접근방법에 있어서 두 번째 특징은 분석단위의 확장에 있다. 근대화이론이 한 사회의 발전과 저발전의 원인을 국내적 요인에 국한시킨 반면에 종속이론은 그 원인을 세계체제 혹은 세계자본주의체제라는 보다 큰 체제의 동태 속에서 찾는다. 따라서 종속이론은 국내적 요인보다 외부적 혹은 국제적 요인을 보다 중시한다. 이러한 국제적 요인의 강조는 단순히 근대화이론이 분석단위의 설정에서 보여준 결합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프랑크와 윌러스틴에 따르면 국가단위의 사회는 분석단위로서 전혀 의미가 없다. 윌러스틴은 “다른 혹성에 비교 가능한 현상이 발견되거나 지구상에 또 다른 ‘근대세계체제(modern world system)'가 발견될지도 모르지만 현재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밖에 없다.”고 말함으로써 사회과학의 분석단위로서 오로지 단하나의 통합된 세계만이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종속이론의 역사적 접근과 분석단위의 확장은 그 이론이 제시하는 명제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그리고 그 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개념의 적합성 여부와 무관하게 발전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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