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1000분의 1 정도는 믿겠지.
원래 동종요법적인 한 방울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것이 아니겠나.
슬슬 고백하게나, 믿는다고 말이야, 하다못해 1만 분의 1이라도..."
...
"그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동요, 하지만 불안, 하지만 믿음과 불신 간의 투쟁 -- 이런 것은 자네처럼 양심이 있는 사람에겐 이따금씩 너무도 큰 고통인지라 차라리 목을 매는 것이 낫지. 나는 그러니까 말일세, 자네가 나의 존재를 아주 조금이나마 믿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일화를 얘기해 줌으로써 자네에게 철저하게 불신을 불어넣은 거라네. 자네가 믿음과 불신 사이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하도록 이끄는 거라네, 여기에는 나만의 목적이 있거든. 새로운 방법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자네는 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자마자 그 즉시 내 눈앞에서 내가 꿈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나한테 확신시키려 들거야, 내 자네를 잘 알고 있지. 나의 목적은 고결한 거야. 내가 자네에게 믿음의 깨알만 한 씨앗 하나라도 부리면 거기서 참나무가 자라날 테고 -- 또 그 참나무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네는 그 위에 앉아 '황야의 은자들과 죄에 물들지 않은 여인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질 걸세. 사실 자네는 남몰래 몹시, 몹시 그러고 싶어 하지 않나. 자네는 메뚜기를 잡아먹고 구도 생활을 하기 위해 황야로 떠날 걸세!"
...
"이보게, 나는 그런 짓만 해왔다네. 온 세상, 아니 온 세상들을 다 잊고 그런 삶 하나한테 달라붙는 거야. 원래 금강석이란 아주 귀한 것이잖나. 정말이지 그런 영혼 하나는 때때로 하나의 상좌 전체와 맞먹는 가치가 있다네 --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계산법이 있거든. 승리란 귀한 것이라네! 그런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자네가 절대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발달 수준이 자네보다 못하지도 않다네. 믿음과 불신의 심연이란 동일한 순간에 한꺼번에 관조할 수 있는 것이어서, 연극 배우 고르부노프의 말처럼 때때로 한 발짝만 내디디면 사람이 '곤두박질'을 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
... 왜냐면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즉, 나마저도 '호산나'를 외치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그 즉시 세상의 모든 것이 싹 사라져 버릴 테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게 아닌가. 바로 그래서 나는 오로지 나의 직업적 의무와 사회적 지위 때문에 내 내부에서 끓어오른 훌륭한 순간을 억누르고 추잡한 일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던 걸세. 선의 명예는 누군가가 죄다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한테는 오직 추잡한 일만 남게 되었지. 그래도 나는 그렇게 공짜로 놀고먹으면서 명예를 누리는 삶이 부럽지는 않네, 명예에는 별로 욕심이 없거든. 그런데 세계의 모든 생명체 중 왜 오직 나만이, 단지 하나만이 모든 점잖은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고 심지어 발길질까지 당하는 운명에 처해졌을까? 사실 사람으로 현현하면 때때로 이런 불미스러운 부산물마저도 감수해야 되거든. 나도 여기에 비밀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저쪽에선 절대 나한테 그 비밀을 털어 놓으려고 하지 않아. 왜냐면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고서 '호산나'를 부르면 그즉시 필수 불가결한 마이너스가 사라지고 온 세상에 건전한 상식이 판칠 테고,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도 신문 잡지 따윈 구독하지 않을 테고 따라서 물론, 그런 걸 비롯한 모든 것이 끝장날 테니까 말이야. 사실 나도 알고 있다네, 내가 결국엔 화해를 하고서 나의 1000조 킬로미터를 끝까지 걸어간 뒤 비밀을 알아낼 것임을.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성내고 버티면서 마음을 다잡은 채 내게 주어진 소명을 이행할 것이네. 바로, 한 명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수천명을 파멸시키는 것이지. 예를 들어, 그 옛날 옛적 나를 그토록 골탕 먹인 단 한 명의 의인 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영혼을 파멸시키고 또 알마나 많은 명예로운 평판들을 치욕스럽게 만들었던가! 그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 나에게는 두 개의 진리가 존재하는 셈이야. 하나는 저 세계의 것, 저쪽의 것으로서 아직은 내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진리이고, 다른 것은 나 자신의 진리이지.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순수한지는 아직은 알 수 없는 거야..., 자네, 잠들었나?
...
... 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먼 자들 같으니! 일단 인류가 하나같이 다 신을 거부한다면(나는 이 시대가 지질학적 시대와 나란히 평행선을 형성하면서 완성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구태여 식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이전의 모든 세계관이, 무엇보다도 이전의 모든 도덕률이 저절로 붕괴될 것이며 완전히 새로운 것이 도래할 것이다. 사람들은 삶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삶으로부터 취하기 위해 한데 뭉치겠지만, 이는 기필코 오로지 이 세계에서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일 따름이다. 인간은 신성과 거인적인 오만함 덕택에 기고만장해질 것이며 그렇게 인신이 나타날 것이다. 이젠 자신의 의지와 과학의 힘으로 시시각각 무한히 자연을 정복함으로써 인간은 예전에 자신이 갈망했던 천상의 열락을 모두 대체 해 줄 만큼 드높은 열락을 시시각각 맛보게 될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부활의 가능성이 없는, 그야말로 필멸의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되, 신처럼 오만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
...
나의 젊은 사상가의 생각은 이랬다네. 이제 문제는 이런 시대가 언제든 도래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도래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인류는 최종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뼛속까지 배어있는 어리석음을 보건대 1000년이 더 지나도 이러한 세계가 건설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진리를 의식하고 있는 사람 중 누구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새로운 원칙에 따라 세계를 건설해도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시대가 절대로 도래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어쨌거나 신과 불멸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은 인신이 될 수 있으며, 설사 그런 사람이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어쨌거나 그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 받은 이상 필요하다면 예쩐의 노예와 같은 인간이 가졌던 온갖 도덕적 장벽을 가뿐한 마음으로 뛰어넘을 수 있다. 신은 법률의 구애를 받지 않으니까! 내가 나타날 곳, 그곳이 지금 곧 제일가는 자리가 될 것이며... .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것으로 끝이다! 정말 하나같이 귀여운 얘기라니까. 다만, 사기를 치고 싶었다면 진리의 승인 따위를 받을 필요가 어디 있나? 하긴, 요즘 러시아의 젊은 녀석이 다 이렇지 뭐. 진리라는 걸 얼마나 사랑하게 됐으면, 승인을 받지 못하면 감히 사기를 칠 엄두도 못 내니까 말이야...
...
"루터의 잉크병이 떠올랐나 보군! 자기는 나를 꿈으로 간주한다고 하면서 꿈을 향해 찻잔을 집어던진다니! 이거야말로 여자들이나 써먹는 수법 아닌가! 하지만 내 이럴 거라고 생각했어, 자네는 그냥 귀를 틀어막고 있는 시늉을 했을 뿐, 실은 다 듣고 있었던 게야... ."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김연경 역, 민음사, 302-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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