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혼이란 어떤 기후, 어떤 침묵, 어떤 고독, 어떤 무리속에 있는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지금 내 고독 속에서 보면 인간은 개미가 아니라 오히려 어마어마한 괴물처럼 보인다네.
공룡이나 익룡처럼 말일세. 탄산으로 가득한 대기, 썩어 가면서 생물을 만들어 내는 뻑뻑한 진창이 그들의 서식처지. 이해할 수 없고 납득 할 수 없는 정글일세.
자네가 즐겨 입에 올리던 '국가'와 '민족'같은 개념, 나를 매혹시키던 '초국가', '인간성'같은 개념은 여기 파괴의 전능한 입김 아래에서는 매한가지 뿐이라네.
우리는 수면 위로 떠올라 몇 마디 하거나, 어떨 때는 몇마디는 커녕 '아', '예' 따위의 불명확한 외마디 소리를 내뱉고는 파괴되고 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네.
그리고 아무리 고귀한 사상이라 해도 해체해 보면 겨를 잔뜩 채운 꼭두각시 인형에 지나지 않고, 그 겨 속에 숨어 있던 용수철이 드러나 버리는 거지.
자네는 나를 잘 아니까 이해하리라 믿네만, 이같이 무참한 생각들은 나를 도망치게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내 내부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필요 불가결한 땔감이 되어 준다네.
나의 스승 붓다의 말처럼 '나는 보았다'라는게 그 이유일세. 나는 보았고, 그리하여 저 유쾌하고도 변덕스러운, 보이지 않는 연출가와 순식간에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맡은 배경을 끝까지, 그러니까 일관되고도 흔들림 없이 연기할 수 있다네.
왜냐하면, 나는 봄으로써, 내가 하느님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이 작품을 함께 창작하고 있으니까.
-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이윤기역, 열린책들, 2023, 세계문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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