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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토론 - 자유론, 스튜어트 밀

PurpleGuy101 2025. 3. 25. 15:36

0.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되지 않을 때에는, 사람들은 그 의견들의 근거만을 알지 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의견의 의미 자체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의견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말들의 껍데기 만을 알 뿐이고, 

그 말들 속에 표현된 알맹이인 진리를 알지 못하기도 하고, 그 말들을 통해서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진리의 일부만을 알게 되기도 한다. 

 

1.

즉, 그 의견은 사람들 속에서 생생한 진리의 실체를 만들어내어서 살아있는 신념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저 그 의견을 기계적으로 암기해서 입으로 반복할 뿐이다. 또는, 그 의견이 사람들에게 남긴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서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진정한 알맹이는 그들 속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인류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은 무수히 벌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정말 진지하게 연구하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

거의 모든 윤리적인 가르침들과 종교적인 신조들이 그런 일을 겪는다. 모든 교설(교리)들은 그것들을 창시한 사람들과 그 창시자들을 따르던 직계 제자들에게는 의미와 활력으로 가득하다. 다른 교설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 교설의 의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그 지지자들에게 한층 더 생생하게 인식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특정한 교설이 다른 것들과 우위를 다투는 싸움에서 이겨서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기도 하고, 또는 발전을 멈추고서 지금까지 확보한 사람들만을 자신의 지지자로 보유한 채 그 이상으로 확산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결말이 나든, 그런 상태가 되면, 그 교설을 둘러싼 논쟁은 수그러들고 점차 사라져간다. 그 교설은 지배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하나의 분파로 인정되어, 이미 자리를 잡고 정착하게 된 것이다.

 

3.

이때부터는 그 지지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의사로 그 교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선대로부터 대물림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의 교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다른 교설로 전향하거나 개종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제1세대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세상과 맞서서 그들 자신을 변호하거나 세상을 그들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대신에 조용히 뒤로 물러나서, 귀 기울여 듣지도 않고, 반대자들에 맞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번거로움도 피하려고 한다. 통상적으로 이때가 그 교설의 생명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4.

어떤 교설을 가르치는 사람이든 모두 그 교설이 담고 있는 지리가 그 지지자들에게 생생하게 깨달아져서 그들의 지성과 감정 속으로 깊이 침투하여 그들의 행동을 실제로 지배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떤 교설이 탄생한 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는 동안에는 그런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은 들리지 않는다. 이 시기에는 그 교설을 신봉하는 자들은 세력이 약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알고, 자신들의 교설과 그 밖에 다른 교설들 간의 차이도 잘안다. 

 

5.

 

이시기에는 그 교설의 지지자들 중에서 상당수가 온갖 사상과 교설들 중에서 그 교설이 토대로 하고 있는 원리들이 무엇인지를 알고있고, 그 원리들이 지닌 모든 중요한 의미들을 검토하고 숙고하며, 그 교설을 자신의 전 존재로 믿을 때에 그 교설이 그들의 인격과 성품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하게 된다.

 

 

6.

하지만 그 교설이 대물림된 것이어서 능동적으로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되고, 그 신봉자들이 제 1세대와는 달리 그 교설이 제시하는 문제의식들을 이제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형식적인 것들만이 남게 되고, 그 교설의 모든 알맹이들은 점점 더 잊혀지게 된다. 마치 어떤 것을 무조건적인 믿음에 의거해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을 지성의 의식적인 작용을 통해서 깨닫거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확증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물림을 통해 받아들인 교설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이 막연하게 동의하는 수준에서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 교설은 인간 존재의 내면적인 삶과 연결관계가 아예 거의 끊어지는 단계까지 도달하게 된다.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박문재역, 현대지성, 2018, 102-10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