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에세이 인용문
강호동 형은 말끝마다 피디 또는 작가 선생님이 버릇이다.
물론 이런 대우가 싫지는 않다.
촬영장에선 사실 굉장히 고맙다. 리더의 헤게모니에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제작진을 본인보다 상위에 올려놓는다. 힘을 실어준다.
강호동이 정한 룰에는 세가지가 있다.
프로그램 녹화 전날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와 축척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오프닝 촬영에 쏟아붓는다.
두번째에 대해서 말하자면 강호동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온몸으로 리액션을 하고
5분 나갈 방송을 1시간이 넘도록 찍는다.
가끔 걱정이 돼서 말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강호동은 "감독님, 시작이 중요해요. 오프닝이 잘되면 나머지는 그냥 따라오는거에요." 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다만 나중에 가서 내가 이해한 바는 한 마디로 말해 '미리 선긋기'를 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진행할 촬영은 '최소한 이 정도'의 열정과 에너지, 재미를 담보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것이다.
오프닝이 이 정도면 본 촬영은 더 재미있겠다. 또 재미있게 만들어야겠다라는 희망과 의무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지막 세번째는 절대 촬영내용 및 편집에 대해 제작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당시 이 형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어필했다.
어떤 프로그램이면 좋겠고, 자기는 어떤 걸 못하고 등.
그럼에도 불평없이 꿋꿋한 호동이형이 그때는 참 신기했다.
나중에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호동이 형 대답이 걸작이다.
"선수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는거지, 나머지는 감독이 알아서 하는거 아닙니까."
[발췌] '나영석 피디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저자 나영석-